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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5.05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2017년 5월 5일자 칼럼
No. 67   등록일 : 2017.05.05  
    321

독을 약으로 바꾸는 곤충의 초능력에 주목하자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 <9> 입하

애벌레 오동통 여름 들머리-식물은 방어물질, 곤충은 해독물질
독성 강한 고사리도 먹어치우는 애벌레 등 신물질 개발에 쓰일까 

» 독성이 강해 덩치 큰 사람도 그대로는 먹지 못하는 고사리 순을 갉아먹는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 곤충의 해독능력에 대해 우리는 거의 모르고 있다.


짙푸른 계절. 모든 세상이 푸르다. 봄기운을 받은 새싹의 연둣빛에서 나뭇잎은 윤기를 더해 진한 녹색으로 바뀌고 두툼하고 투박해졌다. 고개를 들어 숲을 보면 잎이 활짝 펴 나무가 보이지 않는 초록에 초록이다. 부드럽고 싱그러운 연둣빛 봄에서 짙푸름을 더해 본격적인 생장을 하는, 생명력 넘치는 ‘그윽하고 깊은 여름’으로 가고 있다. 아직은 5월의 부드러운 햇살이지만 조금만 열기를 더해도 여름이 되는 햇빛으로 엊그제는 벌써 32도를 넘어 한 여름이다.


» 5월3일 강원도 횡성 산골짜기의 기온이 32도까지 치솟았다.


오늘은 입하(立夏). 짧았던 봄이 물러가고 완연히 여름에 접어드는 때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했던 기운은 사라지고 평균 기온 2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 그간 일교차가 크고 변화 많던 날씨는 안정되고, 모든 생물들이 쉴 새 없이 무성히 자라기 시작한다. 역시 계절의 여왕. 

녹색의 생명을 불어넣는 풀과 나무가 잎을 내어 푸르러지면 먹거리가 풍성해진 곤충도 덩달아 수가 늘어나고 새싹을 먹고 오동통 살이 찐다. 계곡과 숲을 이루는 모든 나무와 풀에 애벌레가 가득하여, 새로운 종을 찾아내고 이들을 키우느라 하루해가 짧다. 계곡 유혈목이와 무당개구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산에는 뻐꾸기 울고 산과 들에는 온갖 나물들이 지천이다. 


» 5월5일 촬영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


종일 땀 흘리는 노동으로 지칠 때도 많고 몸이 아파 속상할 때도 있지만 느리게 주변을 살피며 작고 홀대받는 벌레를 소중히 여겨 바쁘게 살 수 있는 산 속이라 좋다. 정신과 마음을 의탁할 뿐만 아니라 육신을 돌볼 수 있는 자연이라 더욱 좋다. 10년 당뇨에 고혈압과 고지혈과 시시때때로 호소하는 통증으로 늘 아내에게 종합병원이라는 핀잔을 듣고 사는 나에게 특효약인 듯 철따라 산나물을 아낌없이 주는 산 속에 살게 된 것. 곤충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산 속으로 들어오기 전 ‘나물’이라하면 콩나물 팍팍 무쳤냐? 의 콩나물 정도가 전부였는데 산속으로 들어오면서 벌레와 맞서 싸운 식물의 흔적, 산나물을 알았다. 나물은 체질상 처음부터 정을 붙이기는 어려운 요리였다. 하지만 몸에 좋다하고 장을 보러 차를 타고 20분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충 산 속 자연물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쓴 맛 이후에 단 맛을 알게 된 산나물의 매력이 은근해 자연스럽게 채식을 좋아하게 됐다. 

산나물은 뿌리와 줄기 잎 세 부분을 사용하지만 봄나물은 잎을 주로 먹는다. 보통 산나물을 먹을 때 ‘쌉싸름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사실 쓴 맛은 식물의 가장 큰 천적인 애벌레에 대한 자기 방어용 독성 물질이다. 식물의 잎은 햇빛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로 광합성을 하는 중요한 조직인데 끊임없이 먹어대는 천적 애벌레를 피하거나 도망갈 수 없어 독을 만든 것이다. 몸이 작은 곤충에겐 치명적인 독이 되지만 크기가 훨씬 큰 인간에겐 역설적이게도 독이 약이 된 것으로 그저 입맛을 돋우는 정도의 쓴맛이라 나물로 즐긴다. 

이 세상 생물 중에서 가장 종이 많은 곤충에게 산과 강 도심 한 가운데서도 늘 만날 수 있는 널리고 널린 식물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먹이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자원이다. 이동 능력이 없는 식물은 털이나 가시 혹은 두꺼운 잎 따위의 물리적 방어와 담배 니코틴이나 커피나무의 카페인, 양귀비의 모르핀, 모기향 원료인 쑥의 테르펜과 같은 수많은 화학 물질로 방어를 한다. 

가시는 피하면 되고 두꺼운 잎은 오래 씹어 꼭꼭 삼키면 될 터이지만 식물의 독극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곤충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 집단을 활용하여 소화효소와 비타민을 공급받고 알칼로이드나 페놀, 탄닌 같은 식물의 독성 물질을 해독하여 잘 살아갈 수 있다. 애벌레의 해독 능력과 효소인 단백질을 신약 제조에 활용할 계획으로 자료를 축적하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 몸집이 큰 사람에겐 약용식물이지만 작은 곤충에겐 독이다. 약용식물을 먹는 애벌레의 능력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약용식물인 헛개나무를 먹는 네줄붉은가지나방 애벌레.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내에는 전통적으로 식용뿐만 아니라 약용으로 이용되는 두릅, 오가피, 가시오가피, 엄나무(음나무), 헛개나무 및 다래 등 약용 식물 30여 종을 식재하고 있는 약용식물원이 있다. 나물로서 뿐만 아니라 특히 강한 독성 때문에 의약 원료로 활용되는 자원식물과 이들을 먹이로 하는 더 독한 곤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야외 실험실이다. 


» 두릅나무에서 짝짓기 중인 새똥하늘소.


여기저기 안 좋은 데가 없다고 소문난 봄나물의 으뜸 두릅은 새똥하늘소 먹이 식물로 줄기에 알을 낳고 모든 생활을 두릅에서 하다 보니 결국에는 두릅을 죽게 한다. 다래는 머루박각시, 애기얼룩나방, 뒷검은푸른쐐기나방이 잘 먹는다. 헛개나무는 네줄붉은가지나방의 공격을 피해갈 수는 없다. 엄나무 새순으로 2종류의 애벌레를 키웠지만 사육 중 죽는 바람에  생활사를 밝히지 못했다. 


» 다래 먹는 머루박각시 애벌레.


흰 솜털에 싸인 어린아이 주먹 모양 같은 어린잎이지만 독성이 강해 방목장  소조차 절대 먹지 않는 고사리도 얼룩어린밤나방의 먹이다. 방패와 창처럼 곤충의 소화기관은 식물의 최첨단 독극 물질에 대한 적응 진화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생각되며 식물 독성 물질을 해독하는 애벌레의 무한한 가능성을 볼 때 이들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용식물원의 가시오갈피는 20여 년 간 애벌레 연구에 몰두해 온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2015년 이 나무에서 채집한 애벌레는 이때까지 기록이 없는 신종으로 밝혀져 2016년 12월 SHILAP이라는 에스시아이(SCI) 저널에 ‘홀로세큰날개뿔나방(Agonopterix holoceana)’ 이란 이름으로 등재하였다. 세계적으로 처음 보고한 신종은 개인적으로 영광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생물자원을 찾아내고, 보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또한 곤충이 나에게 준 큰 선물이다.


» 가시오갈피나무에서 발견한 홀로세큰날개뿔나방의 성충과 애벌레. 국제 학술지에 신종으로 보고했다.
» 홀로세큰날개세뿔나방을 신종으로 보고한 과학저널 <SHILAP>의 논문.


오월은 맑게 갠 하늘 빛깔과 같은 푸른색이고 녹색이 지천이어서 눈이 편하다. 그러나 녹색이라고 다 좋은 것만 아니다. 맑은 물빛이 사라지고 강들이 제 빛을 잃은 지 오래되어 '녹조 라떼'라는 비아냥을 낳은 ‘4대강 살리기’는 녹색을, 푸르름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녹색을 주창하면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독한 이명박 정부의 허황된 토목 계획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수시로 언론에 등장하여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는 역할을 했던 타락한 엉터리 전문가들이 사업 추진의 근거를 만들어 주었다. 부분적인 사실만 말하거나 학문을 왜곡하여 사회에 해를 끼치는, 대통령보다 더 나쁜 전문가들을 청문회를 통해 반드시 밝혀내어 환경 정의를 살릴 수 있는, 진정 푸르른 오월을 기대한다. 

100년 전 일도 아니고 고작 10여년이 지났는데 결코 잊을 수는 없다. 환경도 없고 경제도 없고 과학도 없었던, 죽지도 않았는데 살리겠다고 생쑈를 한 ‘4대강 살리기’를.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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