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동안 애벌레에 빠져 살면서 지난해 말 현재 곤충 4850종 20만 점의 표본을 정리해 놓았다. 이 과정에 세계적인 신기록종인 홀로세큰날개뿔나방 1종과 홀로세좀나방 등 국내 미기록종 7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공공 연구소도 하기 힘든 일을 그 혼자의 힘으로 해 온 것이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물론 애벌레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린 아기를 돌보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사육 상자에는 애벌레마다 독특한 먹이 식물을 싱싱한 상태로 공급해야 하고 물에 적신 키친타월을 바닥에 까는데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몇 시간마다 배설물을 제거해 줘야 한다. 그는 애벌레 키우기에 관한 한 동갑내기 부인 이정옥 씨에게 많은 빚을 졌다.
“산속 오지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내려와 가장 든든한 정신적 후원을 하는 것 외에 애벌레의 까다로운 식성에 맞춰 가면서 무한한 애정으로 아이 키우듯 애벌레를 길러내는 건 거의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새로운 종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뻐하고 애벌레를 돌보고 관찰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애기뿔쇠똥구리 증식을 할 때 연구소 뒷산 방목장에서 키운 소의 무거운 똥을 운반하느라 고생한 탓인지 지금도 허리가 온전하지 않다.”
‘미래의 블루오션’ 곤충학 이끌 제자 양성의 꿈
그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말 나방 애벌레 153종을 정리한 도감 ‘캐터필러Ⅰ’을 출간했다. 캐터필러란 나비와 나방의 애벌레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애벌레의 한 순간을 담은 도감은 있었지만 이 도감처럼 생애를 모두 다룬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유충(幼蟲) 같은 일본식 한자어를 애벌레로 바꾸는 등 순우리말을 사용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는 올해 안에 Ⅱ, Ⅲ권을 계속해서 펴낼 계획이다.
“세계적인 곤충 분류학자 박규택 강원대 명예교수도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다. 끊임없이 공동의 관심사를 나누는 동료이자 영원한 스승이다. 앞으로도 애벌레를 키우면서 발견하는 신종이나 미기록종에 대해 박 교수님과 함께 논문 작업을 할 것이다.”
그가 인생의 행로를 바꾼 계기는 동아일보 문화기획부에 근무하면서 7년간 맡았던 생태 탐사 프로그램이었다. 이때 곤충과 식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시절 꿈이 되살아났고, 1997년 아예 사표를 던지고 이곳으로 내려온 것. 처음 홀로세생태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다 2005년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도 신설했다.
지금은 3만여 평의 터에 곤충박물관, 실험실, 교육관, 연구관 등을 갖췄다. 2007년엔 서울대 농대에서 곤충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 1980년대 중반 이후 주식과 부동산으로 번 돈 40여억 원을 지금까지 쏟아부은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초기에 갈라진 방바닥 사이로 올라온 가스에 중독돼 온 가족이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는 “따지고 보면 동아일보가 일찍부터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 게 내 운명을 결정한 셈이 됐다”면서 “이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니 금의환향한 기분이다”고 웃었다.
“2005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보존기관으로 지정받아 운영비의 절반을 보조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운영에 애로가 많다. 그래도 소박한 꿈이 있다면 안동대 제자(그는 이 대학 겸임교수다) 7명이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는데 이들을 잘 키워서 이들이 미래의 블루오션인 곤충학을 개척하는 데 힘을 보태도록 하는 것이다.”
생물자원 확보 지지부진
한반도 자생 생물 10만 종… 절반 이상 목록 구축도 못 해
한반도에 자생하는 생물은 모두 10만여 종으로 추정된다. 온대지역 국가 중 국토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편이다. 이 가운데 조사 및 발굴 작업을 통해 목록 구축 작업을 완료한 종은 지난해 말 기준 4만7003종. 이 가운데 곤충이 1만6993종으로 가장 많다. 하지만 한반도 생물의 절반 이상이 미(未)기록종인 셈이다.
이런 현실은 정부가 생물자원의 중요성을 뒤늦게 인식한 때문이다. 환경부는 2006년부터 자생생물 발굴 사업을 시작했고, 다음 해 이를 전담할 기관으로 국립생물자원관(자원관)을 설립했다. 자원관 설립 이전 기록종이 2만9000여 종이었음을 감안하면 지난 10년간 1만8000여 종의 목록을 새로 구축한 셈이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은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는 일은 이제 단순한 환경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생물자원을 이용해 신물질을 개발한 결과 이익이 발생한 경우 과거엔 개발 회사에 독점적인 이익을 보장해 줬지만 2010년 10월 채택한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생물자원 보유국도 그 이익을 공유하게 됐다는 점에서 생물자원도 국부의 원천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2020년까지 자생생물 조사·발굴 사업을 확대해 총 6만 종을 기록할 예정이다. 한반도에 사는 생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미래 잠재 가치를 지닌 생물자원을 발굴하려는 차원에서다. 이를 위해 자원관 주도로 매년 관련 학과 교수 및 연구자 200여 명과 함께 예산 60여억 원을 투입해 작업을 하지만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은 상태다.
자원관 김창무 연구관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2020년까지는 5만5000∼5만6000종의 기록 작업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북한 지역 생물자원 조사 및 발굴 작업을 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라면서 “이것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멸종위기종을 법으로 정해 보호하는 것도 생물 다양성 확보 차원이다. 2012년 마지막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은 모두 246종으로, 이 중 동물이 166종이고 식물이 80종이다. 산업화 이후 각종 오염과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때문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멸종위기종은 서식지에서 반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한다. 다만 서식지 바깥에서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경우 동물원이나 식물원, 수목원, 곤충관 등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관리 능력을 평가해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한다. 2000년 4월 서울대공원이 최초로 지정된 이래 현재 25개 기관이 등록돼 있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2005년 곤충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지정됐다.